지시에서 발표까지
14일
계열사
22개 (재계 7위)
위헌 확인까지
8년 5개월
헌법소원 사건번호
89헌마31

01 · 핵심 요약 · 90초

은행이 거래를 끊으면 회사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 그 결정이 은행 밖에서 내려졌다면 은행은 무엇을 한 것인가.

국제그룹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22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7위 기업집단이었다. 1985년 2월 21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그룹의 전면 해체 방침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면서 해체됐다. 헌법재판소는 1993년 7월 29일 89헌마31 결정에서 이 과정의 공권력 행사가 위헌임을 확인했다.

얼마나 큰 사건인가

헌재 결정문에 정리된 경위는 이렇다. 제일은행은 1984년 12월 27일 교환 회부된 국제상사 발행어음을 부도 처리했다. 이에 채권은행들과 은행감독원이 그룹을 정상화시킨다는 기업정상화 금융지원계획을 마련했고 그룹도 자구노력 이행계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1985년 2월 7일부터 11일 사이에 재무부장관에게 해체 관련 지시를 비밀리에 내렸다. 2월 12일 재무부장관은 제일은행장과 은행감독원장에게 계열사의 은행자금 관리에 착수하고 주거래은행 앞으로 전 재산 처분위임장을 징구하라고 지시했다. 2월 20일에는 제일은행장을 불러 앞서 확정된 금융지원계획과 자구노력 이행계획을 무단히 파기하고 전면해체와 처분위임장 강제징구를 지시했다. 이튿날인 2월 21일 제일은행장이 해체 방침을 발표했고 주식 및 경영권 양도 가계약과 주식매매계약서에 서명날인을 강제로 받았다.

왜 지금 중요한가

헌재는 재무부장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1985년 2월 7일부터 21일 사이에 행한 일련의 공권력 행사가 위헌임을 확인했다. 해체의 기본결정과 인수업체 결정, 제일은행장에게 주식처분위임장을 징구하게 한 지시, 재무부장관이 만든 보도자료에 따라 제일은행 이름으로 언론에 발표하게 한 지시가 모두 대상이다. 인수업체도 은행이 아니라 밖에서 정해졌다. 재무부장관이 1985년 2월 11일 인수자 안을 대통령에게 상신했고 대통령이 그 가운데 하나를 바꿔 확정했다. 재무부장관은 주거래은행과 아무런 상의 없이 직접 교섭에 나서 내정된 인수업체 대표들에게 통고하고 수락을 받았다.

02 · 자세한 이야기

사건은 이렇게 전개됐다

8

어음이 부도 처리됐다

국제그룹은 부산의 국제고무를 모태로 성장해 1980년대에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다. 계열사는 22개였다.

1984년 말 자금 사정이 나빠졌다. 그해 12월 27일 교환 회부된 국제상사 발행어음이 부도 처리됐다.

주거래은행은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채권은행들과 감독기관이 함께 정상화를 위한 지원 방안을 만들었다.

그룹도 이에 상응하는 자구노력 이행계획을 확정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기업 정상화 절차다.

은행감독원도 이 정상화 절차에 관여하고 있었다.

지시가 은행 밖에서 왔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대통령은 1985년 2월 7일부터 11일 사이에 재무부장관에게 해체 관련 지시를 비밀리에 내렸다.

2월 7일 재무부장관은 두 가지 방안을 상신했다. 주력기업인 국제상사만 존속시키고 나머지를 처분하는 안과, 그룹을 전면 해체해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안이다. 대통령은 두 번째를 채택했다.

2월 11일에는 인수자 안이 상신됐다. 대통령은 그 가운데 한 곳의 인수자를 다른 회사로 바꾸고 나머지는 원안대로 확정했다.

교섭도 은행을 거치지 않았다. 재무부장관이 직접 내정된 인수업체 대표들을 만나 통고하고 수락을 받았다.

은행은 인수자가 누구인지 결정 과정에서 알지 못했다.

은행이 발표했다

1985년 2월 12일 재무부장관은 제일은행장과 은행감독원장에게 계열사의 은행자금 관리에 착수하고 주거래은행 앞으로 전 재산 처분위임장을 징구하라고 지시했다.

2월 20일에는 은행장을 직접 불렀다. 앞서 확정된 두 계획을 무단히 파기하도록 하고 전면해체와 처분위임장 강제징구를 지시했다.

이튿날인 2월 21일 제일은행장이 그룹의 전면 해체 방침을 발표했다. 발표에 쓰인 보도자료는 재무부장관이 만든 것이었다.

주식 및 경영권 양도 가계약과 주식매매계약서에 서명날인을 강제로 받으면서 그룹은 해체됐다.

이 시점에 그룹의 자금은 이미 은행 관리 아래 들어가 있었다.

8년 5개월 뒤 위헌 확인

그룹 회장은 복권추진위원회를 세워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1993년 7월 29일 89헌마31 결정에서 해체의 기본결정과 인수업체 결정, 처분위임장 징구 지시, 언론 발표 지시 등 일련의 공권력 행사가 위헌임을 확인했다.

지시가 있었던 1985년 2월부터 8년 5개월 만이다.

위헌이 확인됐으나 그룹은 이미 해체돼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 뒤였다.

계열사들은 이미 다른 기업에 넘어가 각각의 사업에 편입된 뒤였다.

03 · 금융구조

돈·정보·책임은 어떻게 움직였나

주거래은행 제도는 은행이 기업의 자금을 관리하고 정상화 여부를 판단하도록 만든 장치다.

01 · 단계

자금이 막힌다

기업의 자금 사정이 나빠져 어음이 부도 처리된다. 주거래은행이 정상화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다.

02 · 단계

정상화계획을 세운다

채권은행들과 감독기관이 금융지원계획을 마련하고 기업이 자구계획을 확정한다. 여기까지가 통상적인 절차다.

03 · 단계

밖에서 결정된다

결정이 은행이 아닌 곳에서 내려진다. 앞서 확정된 계획이 파기되고 해체와 인수업체가 정해진다.

04 · 단계

은행 이름으로 나간다

결정을 발표하는 것은 주거래은행이다. 밖에서 보면 은행의 판단으로 보이지만 실제 결정은 다른 곳에서 이뤄졌다.

누가 내고 누가 최종 손실을 부담했는가
정보누가 무엇을 언제 알았고 설명했는가
책임계약·공시·통제·감독의 빈틈은 어디였는가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주거래은행 제도가 통로가 된 것은 그 제도의 성격 때문이다. 은행은 기업의 자금을 관리하고 여신 지속 여부를 판단한다. 그 판단을 밖에서 정하면 기업의 존폐를 은행을 통해 결정할 수 있다.

은행이 발표하는 형식을 취한 점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발표에 쓰인 보도자료는 재무부장관이 만들었고 제일은행 이름으로 언론에 나가도록 지시됐다. 밖에서 보면 은행의 경영 판단이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이 아카이브에 기록된 경남기업 워크아웃 특혜 의혹에서도 감독당국 간부가 채권은행을 압박한 사실이 확인됐다. 은행이 기업의 생사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으면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따라온다. 그 영향이 기록에 남지 않으면 결과만 은행의 결정으로 남는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국회와 정부

헌법재판소는 1993년 7월 29일 89헌마31 결정에서 재무부장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1985년 2월 7일부터 21일 사이에 행한 일련의 공권력 행사가 위헌임을 확인했다.

감독당국

채권은행들과 은행감독원은 부도 이후 기업정상화 금융지원계획을 마련했으나 이 계획은 이후 파기됐다. 국회는 198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사안을 다뤘다.

남은 과제

위헌이 확인된 시점에는 이미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 뒤였고 그룹은 복원되지 않았다. 여신 결정에 대한 외부 영향을 기록으로 남기는 절차도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 아카이브에 기록된 경남기업 사건에서 같은 문제가 다시 확인됐다.

최종 부담예금자·차주·은행 건전성

04 · 국민 행동수칙

확인 · 대응 · 신고

기업이 은행과 거래할 때 그 결정의 근거를 문서로 남기는 것이 기본이다.

01

지금 확인할 것

  • 주거래은행과의 여신 약정에서 만기와 갱신 조건, 중단 사유를 확인한다.
  • 여신 조건이 변경되면 그 사유를 서면으로 받는다. 구두 통보만으로는 근거가 남지 않는다.
  • 워크아웃이나 정상화 절차에 들어가면 채권단 협의 내용과 의결 사항을 문서로 확인한다.
  • 은행이 요구하는 담보나 처분위임의 범위를 계약서에서 확인한다. 서명 전에 법률 검토를 받는다.
  • DART(dart.fss.or.kr)에서 회사의 차입금 만기 구조와 주채권은행을 확인한다.
02

일이 생겼을 때

  • 여신 중단이나 회수 통보를 받으면 그 근거 조항을 서면으로 요구한다. 약정에 없는 사유라면 이의를 제기한다.
  • 부당한 여신 관행이 의심되면 금융감독원 1332와 e-금융민원센터(fcsc.kr)에 민원을 제기한다.
  • 공권력 행사로 재산권이 침해됐다면 헌법소원을 검토한다. 청구 기간은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사유가 있는 날부터 1년이다(헌법재판소법 제69조).
  • 행정처분에 불복하려면 처분이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한다(행정소송법 제20조).
  •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일부터 10년이다(민법 제766조).
03

어디에 신고하나

  • 금융감독원 1332 / e-금융민원센터 fcsc.kr
  • 헌법재판소 www.ccourt.go.kr
  • 전자공시시스템 DART dart.fss.or.kr
  • 대한법률구조공단 132
스스로에게 물을 질문

답하기 어렵거나 확인되지 않은 항목이 있으면 결정을 미룹니다.

  1. 01

    여신 조건 변경의 사유를 서면으로 받았는가.

  2. 02

    약정에 없는 사유로 회수 통보를 받지 않았는가.

  3. 03

    처분위임장 등 서명을 요구받고 있지 않은가.

  4. 04

    채권단 협의 내용이 문서로 남아 있는가.

  5. 05

    구두 통보만으로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상설 확인 창구

05 · 필자의 결론

주거래은행 제도는 은행이 기업의 정상화 여부를 판단하도록 만든 장치다. 그 판단이 밖에서 정해지면 은행은 결정하는 곳이 아니라 전달하는 곳이 된다. 이 사건에서 정상화계획은 확정된 뒤 파기됐고, 인수업체는 은행과 상의 없이 정해졌으며, 발표 자료도 밖에서 만들어졌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확인한 것은 8년 5개월 뒤였고 그때는 이미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 뒤였다.
사실과 판단의 구분국제그룹 해체와 헌재 위헌 결정

확인된 사실, 감독당국의 판단, 법원의 판단과 필자의 해석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쓴다. 위 결론은 필자의 판단이며, 앞의 서술은 감독당국 발표와 판결, 공시자료를 근거로 한다. 진행 중인 절차는 확정된 것으로 쓰지 않는다.

06 · 근거 자료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독자가 판단의 근거를 직접 추적할 수 있도록 감독당국 발표, 판결, 공시와 연구자료를 제시한다. 사실관계 기준일은 2026.09.03이다.